국가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애국심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왕조시대에는 국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애국심으로 둔갑하기도 하였고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민족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애국심이 되기도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긍지와 이를 실천하여 국민의 복리 증진에 기여 하는 정도의 가치를 애국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애국심에 대한 논의는 수없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애국심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애국심을 논한다는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쉽게 설명하자면 애국심이라 할 수 없는 것을 논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국가가 전쟁에 돌입했을 때 등 돌리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애국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주민의 복리 및 민원사항을 외면하는 것은 애국적이라 할 수 없다.
회사에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을 차별하거나 상이용사 또는 국가 유공자를 차별하는 것은 애국적이지 않을 것이며 일반 국민 다수가 내는 성실한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애국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군 복무를 회피하거나 자녀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도록 하는 행위 또한 애국적이지 않으며 외국의 독재자를 찬양하는 것도, 애국심이라 하지 않을 것이며 선거에 있어서 무조건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국민을 무시하거나 여론을 왜곡하는 행위도 애국심과는 거리가 있다 할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금 납부하는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강요하거나 후원금을 자신의 치부를 위해 사용하는 것도 애국적이라 할 수 없으며 기업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산을 빼 돌이거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 또한 애국심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직 권력 쟁취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복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국가주의를 지향하는 사람 역시 애국적인 사람은 아니라 할 것이다. 국가주의는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진실 또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때 느끼는 분노가 있다면 애국심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주의는 윤리적으로든 미학적으로도 보편적 가치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국심은 무엇이라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국과 인류에 봉사하는 일에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세계대회에서 우승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인다거나 자국민의 긍지를 높여 교류 확대를 가져오거나 문화부문에 있어 탁월한 활동으로 국위 선양 한다든지 인류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여 봉사한다거나 정치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교활동에 성과를 가져오는 것도 애국적이라 할 것이다.
애국자는 국민의 목소리에 경청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며 국민의 이상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되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애국자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나라가 잘되기를 더 발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애국적인 사람은 국가 안위를 올바르게 살피고 유지 발전시켜야 하며 국민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규제를 완화하면서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은 “애국심은 나라번영의 영원한 조건이다.”라고 했으며 유관순 열사는 “가족이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집이 존재할 수 없기에 나라 사랑하기를 내 집같이 하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인간 최고의 도덕은 애국심이다.”라고 했다. 한결같이 선각자들이 말하는 의미의 애국심은 국가가 잘 되고 백성이 편안하며 도덕적으로 국민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국자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사소한 것에 대의를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애국심은 자국만을 위한 것이라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인류문명의 보전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의 함양 그리고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번영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애국심의 발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