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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 황혼 단상>
성적이 행복순인 사회는 불행하다
 
양천신문 기사입력  2019/08/31 [14:04]

이영호 작가

전 강서고, 영도중 교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1989년에 개봉한 청소년영화다. 제자가 이 영화에 출연했는데 담임인 나에게 시사회 관람권 2장을 주면서 “꼭 감상하시고 평가해주세요.”라고 부탁해서 아내와 같이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입시 위주의 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한 작품으로 당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한 여중생의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1986년 전교에서 1등 하던 서울의 모 여중 3학년 A양이 자살했고 신문 일간지에 편지 형식의 유서가 공개됐다. 유서는 과열 입시 경쟁에 찌든 당시 학교 교육 풍토에 큰 경종을 울렸다. 화제작이라 그 당시 많은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했었다. 유서의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H에게.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을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중략>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내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중략>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 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에서도 별로 변한 것 없이 입시 과열은 계속되고 있다. 한창 꿈 꾸며 자라야 할 어린 학생에게 치열한 입시 전쟁을 시켜야 하는 교육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입시철이 되면 여전히 어린 학생들의 성적을 비관한 자살사건이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부모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네가 행복해지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인은 대개 국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해야 개인의 행복 추구 및 삶의 만족도 향상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명문대 선호는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경쟁의 쳇바퀴에 가둬두는 굴레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을 계속 보고만 있을 것인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겠다. 그 특단의 조치는 ‘대학 평준화’라고 생각한다.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학 평준화가 우리 사회에선 아직 공론화되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제부터라도 사교육과 학벌주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선 진지하게 대학 평준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대학 평준화가 되면 우수한 학생들이 상위 몇 개 대학에 집중되지 않고 전국 각지의 대학으로 분산 된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누구나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입학은 자유롭되 졸업의 문은 엄격하게 관리하면 뛰어난 인재를 계속해서 길러낼 수 있다.


대학 평준화가 되면 지방대학이 되살아나고 인구분산 정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명문대 출신’이란 건방진 우월감과 ‘비(非) 명문대 출신’이란 쓸 데 없는 패배의식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교육비 지출이 해소되고 뒤틀린 학교 및 가정의 교육문화도 바뀌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당시 한번 대학 졸업장을 따면 영원히 우려먹고 독점적 힘을 발휘해 끼리끼리 정보를 유통해 특권사회를 형성한다며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 서열의 해소를 주장했다. 수직적 사회 구조를 수평적 사회 구조로 바꾸고 인재 할당제 도입을 중심으로 한 지방대학 육성 등을 제안했으며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학 평준화가 되면 기득권자들의 패권과 그동안의 아성이 무너지게 되니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자식을 생각하면 먼 훗날 잘된 일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과거 일류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과열로 어린 학생들의 건강과 정서가 크게 위협 받자 중·고등학교를 평준화시켰다. 처음에는 불만과 잡음이 있었으나 그 후 잘한 조치로 평가됐다.


학벌이 한 사람의 이력에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그 사람의 능력을 재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학벌보다는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활동했느냐는 경력이 더 중요하고 그 사람의 ‘지금’에 대한 입체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하는 사회가 바람직하고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 평준화가 사회적 의제로 진지하게 논의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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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31 [14:04]  최종편집: ⓒ 양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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