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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 황혼 단상-경주 교동 최부자 가문이 그립다
 
양천신문 기사입력  2019/04/01 [10:54]

이영호 작가(창작산맥 등단)

전 강서고, 영도중 교감

 

고위 공직자들과 재계 인사들이 좋지 못한 일로 대중매체를 통해 연일 보도 되고 있다. 결정적 증거나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두고 볼 일이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노라면 좋은 모습이 아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좋지 못한 일로 등장하니 실망과 우려가 커지고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이럴 때일수록 올곧게 살아온 우리 선인들의 발자취가 그리워질 따름이다. 조선 시대 관료 중 청백리(淸白吏) 정신으로 후세들에게 모범을 보이신 분들이 많다. 그중에서 황희, 맹사성, 박수량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박수량은 40년 관직 생활에도 집 한 칸을 마련하지 않을 만큼 청렴결백했다.


그는 후손들에게 “나는 초야에서 태어나 임금의 후한 은총으로 판서 벼슬까지 올랐으니 그 영화는 과분하다. 내가 죽은 후 행동을 삼가 시호(諡號)도 주청하지 말고 묘도 크게 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부자(富者)이면서도 모범을 보인 이들도 많다. 경주 교동의 최부자 가문이 대표적 사례다. 최부자 가문은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300년에 거쳐 12대를 내려오면서 만석꾼의 전통을 이었다.


그 비결은 이 가문의 가훈에서 찾을 수 있다. 높은 벼슬을 삼가고, 일정 정도 재산을 모은 후에는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흉년에 남들이 싼값에 내놓은 논밭을 매입하지 말 것 등을 가훈으로 내걸었다.


또 며느리가 시집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 남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품성을 갖게 하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대대로 가르쳤다. 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최준(1884 -1970)은 전 재산을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에 기증했으며 백상상회를 세워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한 노승(老僧)으로부터 받은 금언(金言)을 평생 간직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이렇다. “재물은 분뇨(똥거름)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사방 골고루 밭에 흩어 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이 시대 공직자와 재벌 총수 및 거부(巨富)들이 청백리 박수량과 경주 최부자 가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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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1 [10:54]  최종편집: ⓒ 양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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